Wednesday, September 22, 2010
태정관 지령문 (太政官指令)
제목 | `태정관 지령문'은 왜 중요한가
글쓴 사람 : 웹천사 날짜 : 2006-11-20 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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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 지령문'은 왜 중요한가>
[연합뉴스 2006-11-20 10:46]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
일본 최고국가기관이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한 `결정적 사료'
日정부ㆍ관변학계, `독도 고유영토설 붕괴' 우려해 은폐ㆍ왜곡
"문서 내용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야..한국정부 공식제기 필요"
◇ 태정관 지령문은 어떤 내용인가 = 일본 내무성은 1876년 전국의 지적(地籍)을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기 위해 각 현에 조사를 지시했다. 그 해 10월 16일 시마네(島根) 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 현의 지도와 지적 조사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문의했다.
내무성은 17세기 말 조선과 주고 받은 왕복 문서와 기록들을 모두 조사했다. 내무성은 5개월 간의 조사 결과 이 문제는 이미 1699년에 끝난 문제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며 ‘우리나라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짓고 일본 지도와 지적 조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무성은 이 문제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1877년 3월17일 당시 입법ㆍ행정ㆍ사법 3권을 장악하고 있던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 권력 기관이자 의사결정 기관인 태정관(다조칸ㆍ太政官)에 자문을 구했다. 이 때 내무성은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1699년 조선과 구 일본정부 간에 왕래가 끝나 본방(本邦.일본)과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국가 판도(版圖)의 취함과 버림은 중대한 일이니 확인하고 싶다"고 조회를 요청했다. 여기서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울릉도와 독도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케시마'는 울릉도, `외일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불렀다.
이에 대해 태정관은 자체 조사를 끝낸 후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일본해내 다케시마 외일도를 판도외(版圖外)로 정한다'는 공문서를 같은 해 3월 29일자로 내무성에 내려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태정관 지령문'이다.
태정관 지령문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명심할 것"이라는 문구까지 나온다. 다시 말해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구 일본정부(에도 막부) 때 끝난 문제로 일본영토가 아니라고 내무성에 강한 표현의 명령으로 시달한 것이다. 태정관의 이 지령은 1877년 4월 9일 시마네 현에도 하달됐다.
태정관은 1870년에도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조선의 부속이 된 전말'을 외무성에 조사케 했다. 당시의 조사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나, 주목되는 부분은 태정관이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조선의 부속'이라고 확실히 말했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을 조사한 태정관이 1877년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본방(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밝힌 것은 문서의 맥락상 마쓰시마(독도)를 조선 영토로 확실하게 인정한 셈이다.
◇ 왜 중요한가 = 태정관 지령문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일본의 한 교수가 논문에 이 태정관 지령문의 내용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독도문제를 연구하는 일부 국내 학자와 전문가들이 이 지령문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태정관 지령문이 갖는 `중요성'이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일본의 관변 학자들이 지령문에 나오는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 중 '외일도'가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거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식의 궤변 등으로 왜곡하거나 은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정관 지령문'을 잘 읽어보면 '외일도'는 '마쓰시마(松島.당시 독도의 일본이름)'라고 기록되어 있고 위치, 크기, 특징 등이 정확하게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태정관 지령문이 학계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 것은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자국영토로 강제 편입한 지 만 100년이 된 지난 해 3월,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면서 한일 양국 간에 독도 영유권 논쟁이 불붙으면서다.
일본정부가 전례없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표면화, 노골화한 데 맞서 한국도 그간의 `무시 전략'에서 벗어나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국내 독도 문제 연구가들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드러낸 `결정적 사료'로 태정관 지령문을 재조명하게 됐다.
일본이 국제법상의 `무주지(無主地) 선점'을 내세워 1905년 단행한 독도 시마네현 편입은 당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익히 알고 있었던 일본 정부 요직의 관료들이 한 어업인을 사주해 꾸며낸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 관료가 독도를 시마네(島根) 현으로 억지 편입하는 `공작'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도를 조선영토로 분명히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 국민까지 속여온 셈 = 태정관 지령문이 일본에게 얼마나 민감한 `사료'인가는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와 내용을 알게 된 일본인들이면 누구나가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주장해온 `독도 고유 영토론'이 "뭔가 이상하다"고 의문을 갖게 된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니 명심하라'고 지시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국내의 한 독도 문제 연구가가 이 태정관 지령문을 일본 정치인들에게 보여주고 내용을 설명했더니 한결같이 "이런 문서가 있었느냐"며 일본 정부의 영유권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연합뉴스가 이번에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질의하는 과정에서도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민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해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답변을 보류하겠다"면서도 "일본정부가 회답을 할테니 그것으로 대신하겠다"고 답변을 떠넘겼다. 반면 공산당 관계자는 한국측의 지적에 분명한 이해를 표시했다. 이번 질의는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일본 외무성은 수차례의 재촉에도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다 "며칠 내로도 답변이 없으면 태정관 문서 내용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마지막으로 재촉하자 부랴부랴 "조사.분석중"이라는 답변 아닌 답변을 내놓았다. 그만큼 일본 정부와 관변 학자들이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를, 독도 영유권의 진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은폐, 왜곡해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국내 학계는 일본 독도 연구자들의 필독서인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를 저술한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사망)가 저서에서 태정관 지령문을 완벽하게 은폐시켰다고 지적한다. 외무성 연구원으로 사실상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논리를 개발한 가와카미의 은폐 행위가 일본 정부의 주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 일본정부나 관변학자, 관변 사이트 모두 그의 수법대로 태정관 문서를 은폐, 왜곡시켜온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일본 정부와 관변 학자들은 독도 영유권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결정적 사료를 은폐함으로써 일본 국민까지 속여온 셈이다.
국내의 한 연구가는 "태정관 문서의 내용이 일본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면 한일 독도영유권 논쟁의 양상이 아마 달라질 것"이라면서 "한국은 이 문서를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독도문제 전문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시마네(島根)대 명예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정부는 태정관 문서 등을 일본에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쓴 사람 : 웹천사 날짜 : 2006-11-20 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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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 지령문'은 왜 중요한가>
[연합뉴스 2006-11-20 10:46]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
일본 최고국가기관이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한 `결정적 사료'
日정부ㆍ관변학계, `독도 고유영토설 붕괴' 우려해 은폐ㆍ왜곡
"문서 내용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야..한국정부 공식제기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태정관 지령문은 1877년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는 영토, 다시 말해 조선 영토라고 공식 인정한 문서다.
태정관 지령문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태정관 지령문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 태정관 지령문은 어떤 내용인가 = 일본 내무성은 1876년 전국의 지적(地籍)을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기 위해 각 현에 조사를 지시했다. 그 해 10월 16일 시마네(島根) 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 현의 지도와 지적 조사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문의했다.
내무성은 17세기 말 조선과 주고 받은 왕복 문서와 기록들을 모두 조사했다. 내무성은 5개월 간의 조사 결과 이 문제는 이미 1699년에 끝난 문제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며 ‘우리나라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짓고 일본 지도와 지적 조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무성은 이 문제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1877년 3월17일 당시 입법ㆍ행정ㆍ사법 3권을 장악하고 있던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 권력 기관이자 의사결정 기관인 태정관(다조칸ㆍ太政官)에 자문을 구했다. 이 때 내무성은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1699년 조선과 구 일본정부 간에 왕래가 끝나 본방(本邦.일본)과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국가 판도(版圖)의 취함과 버림은 중대한 일이니 확인하고 싶다"고 조회를 요청했다. 여기서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울릉도와 독도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케시마'는 울릉도, `외일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불렀다.
이에 대해 태정관은 자체 조사를 끝낸 후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일본해내 다케시마 외일도를 판도외(版圖外)로 정한다'는 공문서를 같은 해 3월 29일자로 내무성에 내려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태정관 지령문'이다.
태정관 지령문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명심할 것"이라는 문구까지 나온다. 다시 말해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구 일본정부(에도 막부) 때 끝난 문제로 일본영토가 아니라고 내무성에 강한 표현의 명령으로 시달한 것이다. 태정관의 이 지령은 1877년 4월 9일 시마네 현에도 하달됐다.
태정관은 1870년에도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조선의 부속이 된 전말'을 외무성에 조사케 했다. 당시의 조사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나, 주목되는 부분은 태정관이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조선의 부속'이라고 확실히 말했다는 부분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을 조사한 태정관이 1877년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본방(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밝힌 것은 문서의 맥락상 마쓰시마(독도)를 조선 영토로 확실하게 인정한 셈이다.
◇ 왜 중요한가 = 태정관 지령문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일본의 한 교수가 논문에 이 태정관 지령문의 내용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독도문제를 연구하는 일부 국내 학자와 전문가들이 이 지령문의 존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태정관 지령문이 갖는 `중요성'이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일본의 관변 학자들이 지령문에 나오는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 중 '외일도'가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거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식의 궤변 등으로 왜곡하거나 은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정관 지령문'을 잘 읽어보면 '외일도'는 '마쓰시마(松島.당시 독도의 일본이름)'라고 기록되어 있고 위치, 크기, 특징 등이 정확하게 현재의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태정관 지령문이 학계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 것은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자국영토로 강제 편입한 지 만 100년이 된 지난 해 3월,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면서 한일 양국 간에 독도 영유권 논쟁이 불붙으면서다.
일본정부가 전례없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표면화, 노골화한 데 맞서 한국도 그간의 `무시 전략'에서 벗어나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국내 독도 문제 연구가들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드러낸 `결정적 사료'로 태정관 지령문을 재조명하게 됐다.
일본이 국제법상의 `무주지(無主地) 선점'을 내세워 1905년 단행한 독도 시마네현 편입은 당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익히 알고 있었던 일본 정부 요직의 관료들이 한 어업인을 사주해 꾸며낸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 관료가 독도를 시마네(島根) 현으로 억지 편입하는 `공작'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도를 조선영토로 분명히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 국민까지 속여온 셈 = 태정관 지령문이 일본에게 얼마나 민감한 `사료'인가는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와 내용을 알게 된 일본인들이면 누구나가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주장해온 `독도 고유 영토론'이 "뭔가 이상하다"고 의문을 갖게 된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니 명심하라'고 지시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국내의 한 독도 문제 연구가가 이 태정관 지령문을 일본 정치인들에게 보여주고 내용을 설명했더니 한결같이 "이런 문서가 있었느냐"며 일본 정부의 영유권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연합뉴스가 이번에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질의하는 과정에서도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민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해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답변을 보류하겠다"면서도 "일본정부가 회답을 할테니 그것으로 대신하겠다"고 답변을 떠넘겼다. 반면 공산당 관계자는 한국측의 지적에 분명한 이해를 표시했다. 이번 질의는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일본 외무성은 수차례의 재촉에도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다 "며칠 내로도 답변이 없으면 태정관 문서 내용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마지막으로 재촉하자 부랴부랴 "조사.분석중"이라는 답변 아닌 답변을 내놓았다. 그만큼 일본 정부와 관변 학자들이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를, 독도 영유권의 진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그 사실을 은폐, 왜곡해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국내 학계는 일본 독도 연구자들의 필독서인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를 저술한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사망)가 저서에서 태정관 지령문을 완벽하게 은폐시켰다고 지적한다. 외무성 연구원으로 사실상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논리를 개발한 가와카미의 은폐 행위가 일본 정부의 주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 일본정부나 관변학자, 관변 사이트 모두 그의 수법대로 태정관 문서를 은폐, 왜곡시켜온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일본 정부와 관변 학자들은 독도 영유권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결정적 사료를 은폐함으로써 일본 국민까지 속여온 셈이다.
국내의 한 연구가는 "태정관 문서의 내용이 일본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면 한일 독도영유권 논쟁의 양상이 아마 달라질 것"이라면서 "한국은 이 문서를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독도문제 전문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시마네(島根)대 명예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정부는 태정관 문서 등을 일본에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무성 팜플렛 주장에 대한 반박
재일교포 독도연구학자 박병섭 씨가 작성하신 반월성 통신의 외무성이 발표한 팜플렛에 대하여 전면 반박하는 글 링크 입니다
http://www.han.org/a/half-moon/kor/mofa-J/mofa-1.html
http://www.han.org/a/half-moon/kor/mofa-J/mofa-1.html
한국바로알리기 민간기획단 반크에서 반박하는 자료입니다
[이사람] “독도연구 왜 일본자료 활용 안하나”
[이사람] “독도연구 왜 일본자료 활용 안하나”
‘독도는 일본땅’ 연구진에 맞서는 ‘재일 논객’ 박병섭씨
김도형 기자
» 박병섭(66·사진)
30년 회사원, 독학끝 역사이론 ‘무장’
일 우익학계 시모조 교수의 ‘천적’ 활동
“폐쇄적 연구 한계” 지피지기 분발 당부
현재 일본에서 독도에 대해 가장 활발한 발언을 하는 사람은 시모조 마사오(58) 다쿠쇼쿠대학 교수이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이후 그가 쓴 독도 관련 논문이나 기고문은 연간 5~6편을 헤아린다. 당시 시마네현이 만든 ‘다케시마연구회’의 좌장을 맡아 2년간의 연구 끝에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조사 연구 최종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그는 현재 시마네현의 ‘웹 다케시마 문제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실사구시’라는 방을 통해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의 독도 연구 논문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의 비판 대상 중에는 ‘반월성’이란 필명으로 일본에서 활동중인 재일동포 독도연구가 박병섭(66·사진)씨도 포함돼 있다. ‘반월성 통신’이란 인터넷 홈페이지와 책자를 통해 2000년 이후 독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하는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해온 박씨의 주요한 논박 대상도 시모조 교수이다. 말하자면 시모조 교수와 박씨는 독도문제에 관한 한 천적인 셈이다.
박씨는 지난 6월 영남대에서 펴낸 <독도연구>(제4호)에 실린 ‘시모조 마사오 논설을 분석한다’는 논문을 통해 그 주장의 허구성을 낱낱히 지적했다. 특히 1877년 메이지 정부의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에서 “다케시마(당시 울릉도 지칭) 외 1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지령을 내린 사실의 해석을 둘러싸고 ‘1도가 독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시모조 교수의 주장을 통렬히 논박했다.
그는 “1987년 태정관 지령을 처음 발굴한 호리 가즈오(교토대 교수)를 비롯해 나이토 세이추(시마네대 명예교수) 등 일본 학자들도 ‘1도가 독도’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시모조는 이 해석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2004년 이후 ‘외 1도는 불분명하다’고 주장하더니 그 후 해마다 자신의 주장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케시마=독도 논쟁>(나이토 세이추와 공저, 2007년 12월 신간사), <안용복 사건에 대한 검증>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07년 12월) 등 독도 관련 저서와 논문 5~6편을 펴낸 박씨는 사실 대학에서는 사학과 거리가 먼 물리를 전공했다. 졸업 뒤 일본 회사에서 30년 넘게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한 그는 “역사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한-일간 역사를 혼자서 공부했다. 95년 10월부터 일본의 식민통치와 전후 책임 문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반월성 통신’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해 현재 979건의 논문과 각종 글을 발표했다. 특히 96년 6월8일부터 연재한 종군위안부 관련 글은 100회까지 이어져 보수적인 <요미우리신문>에도 보도되는 등 큰 반향을 불렀다.
“을사조약의 합법성 문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글을 올리자 일본 우익들이 맹렬히 공격을 해오더군요. 상대방의 공격에 침묵할 수 없어 대응하는 차원에서 글을 올리다보니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민족주의 개념을 내세우진 않는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뿐이죠. 독도 문제의 핵심 쟁점인 안용복의 행적을 둘러싼 진실도 한-일간에 격차가 큽니다. 그 격차를 좁힘으로써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 연구가 (한-일 양국)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주장이나 활동이 일본 내 여론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적극적인 일본 내 정보전달 활동을 주문했다. “주일 대사관과 한국문화원에 독도 강연회 같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요청했지만 정치 관련 행사는 곤란하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민단 차원에서도 소극적이고요.”
그는 또 한국 역사학자들도 독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 쪽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1국주의 연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분발을 당부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기사등록 : 2008-09-04 오후 07:08:52 기사수정 : 2008-09-05 오전 02: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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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meaning of Dokdo to Koreans? 독도의 의미
[What is the meaning of Dokdo to Koreans?]
First of all, Koreans consider Dokdo as a part of their body.
In fact, the island is proclaimed to be within the territory of the Korean government. As an administrative district, the actual address of Dokdo is 1-96 Dokdo-li, Ulleung-eup, Ulleung-gun, Gyeongsangbuk-do, South Korea. Its exact location is 131 degrees 52 minutes of east longitude, and 37 degrees 14 minutes of north latitude. Dokdo is consisted of two main islands, the East island and the West island, and 89 small attached islands. Its total size is 182,453㎡.
Secondly, Dokdo is a part of Korea's history.
Records show that since the Shilla Dynasty, which existed in Korea about 1500 years ago, Dokdo belonged to Korea. Other historical documents of Korea, such as 'Samguksagi' and 'Sejongjirisillok', support this fact as well. This shows that Dokdo has been an island of Korea since ancient times, and also has been acknowledged so to the Korean people.
Thirdly, to the Korean people, Dokdo is their spiritual birthplace.
Dokdo captures its visitors' soul with its beautiful scenery made up with volcanic islands that were created in the ancient times. Furthermore, with rare sea birds such as fork-tailed petrel, Seum-se and black-tailed gull inhabiting in its islands, Dokdo is officially protected and designated as the natural monument No.336 by the Korean government.
Also, Dokdo is the symbol of pride in Koreans.
Using its geopolitical position of Dokdo and Ulleungdo, Japan attacked the Russia's Balt fleet, and won the war in 1905. Five years later, Japan occupied Korea by force and committed unspeakable atrocities upon the Korean people for 35 years. By the collapse of the Imperial Japan at the World War II, Korea became an independent nation, and Japan returned Korea's land to its rightful owner. However, failing to abandon its militaristic desire, Japan has been arguing its proprietary rights of Dokdo to this day.
To Koreans, Dokdo is a holy cross for peace. It is a symbol of peace that will stop colonialism and militarism from ever reviving again.
* More information about Dokdo
http://www.dokdo.go.kr/
http://www.dokdo.re.kr/
http://www.dokdomuseum.go.kr/
http://www.korea.net/news/issues/issueView.asp?issue_no=45
[독도의 의미]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 동경 131도52, 북위 37도14에 위치해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에 있으며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총면적은 187,453㎡에 달합니다.
독도는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독도는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만큼 신비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태고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희귀한 해조류들이 살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역사이기도 합니다.
약 1500여년전 한국의 신라 왕조때부터 독도에 대한 기록이 소개되어 있고,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한국의 여러 역사책과 문헌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1905년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러시아의 발트함대를 격침하여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5년 후인1910년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여 무려 35년간 한국인의 삶에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조선은 해방이 되었고,
독도등 조선의 모든 영토는 대한민국에 반환하게 되었으나,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의 군국주의적 열망을 버리지 못해,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평화를 향한 십자가입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독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맞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민족의 자존심이며, 21세기 다시는 아시아에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부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십자가입니다.
<독도관련이해 참고사이트>
http://www.dokdo.go.kr/
http://www.dokdo.re.kr/
http://www.dokdomuseum.go.kr/
http://www.korea.net/news/issues/issueView.asp?issue_no=45
First of all, Koreans consider Dokdo as a part of their body.
In fact, the island is proclaimed to be within the territory of the Korean government. As an administrative district, the actual address of Dokdo is 1-96 Dokdo-li, Ulleung-eup, Ulleung-gun, Gyeongsangbuk-do, South Korea. Its exact location is 131 degrees 52 minutes of east longitude, and 37 degrees 14 minutes of north latitude. Dokdo is consisted of two main islands, the East island and the West island, and 89 small attached islands. Its total size is 182,453㎡.
Secondly, Dokdo is a part of Korea's history.
Records show that since the Shilla Dynasty, which existed in Korea about 1500 years ago, Dokdo belonged to Korea. Other historical documents of Korea, such as 'Samguksagi' and 'Sejongjirisillok', support this fact as well. This shows that Dokdo has been an island of Korea since ancient times, and also has been acknowledged so to the Korean people.
Thirdly, to the Korean people, Dokdo is their spiritual birthplace.
Dokdo captures its visitors' soul with its beautiful scenery made up with volcanic islands that were created in the ancient times. Furthermore, with rare sea birds such as fork-tailed petrel, Seum-se and black-tailed gull inhabiting in its islands, Dokdo is officially protected and designated as the natural monument No.336 by the Korean government.
Also, Dokdo is the symbol of pride in Koreans.
Using its geopolitical position of Dokdo and Ulleungdo, Japan attacked the Russia's Balt fleet, and won the war in 1905. Five years later, Japan occupied Korea by force and committed unspeakable atrocities upon the Korean people for 35 years. By the collapse of the Imperial Japan at the World War II, Korea became an independent nation, and Japan returned Korea's land to its rightful owner. However, failing to abandon its militaristic desire, Japan has been arguing its proprietary rights of Dokdo to this day.
To Koreans, Dokdo is a holy cross for peace. It is a symbol of peace that will stop colonialism and militarism from ever reviving again.
* More information about Dokdo
http://www.dokdo.go.kr/
http://www.dokdo.re.kr/
http://www.dokdomuseum.go.kr/
http://www.korea.net/news/issues/issueView.asp?issue_no=45
[독도의 의미]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 동경 131도52, 북위 37도14에 위치해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에 있으며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총면적은 187,453㎡에 달합니다.
독도는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독도는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만큼 신비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태고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 희귀한 해조류들이 살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역사이기도 합니다.
약 1500여년전 한국의 신라 왕조때부터 독도에 대한 기록이 소개되어 있고,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한국의 여러 역사책과 문헌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1905년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러시아의 발트함대를 격침하여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5년 후인1910년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여 무려 35년간 한국인의 삶에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조선은 해방이 되었고,
독도등 조선의 모든 영토는 대한민국에 반환하게 되었으나,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의 군국주의적 열망을 버리지 못해,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있어 평화를 향한 십자가입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독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맞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민족의 자존심이며, 21세기 다시는 아시아에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부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십자가입니다.
<독도관련이해 참고사이트>
http://www.dokdo.go.kr/
http://www.dokdo.re.kr/
http://www.dokdomuseum.go.kr/
http://www.korea.net/news/issues/issueView.asp?issue_no=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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